2012년에 나온 『옥스퍼드 맥주 컴패니언(The Oxford Companion to Beer)』의 비엔나 라거 항목은 이 맥주가 오스트리아 빈(영어 이름 비엔나)에서도 드물게 빚어진다고 썼습니다 1. 맥주 심사 기준인 BJCP의 2021년 지침에서도 비엔나 라거의 시판 예시 일곱 가지 가운데 다섯은 미국 크래프트 맥주이고, 오스트리아 맥주는 하나뿐입니다 2. 빈에서 태어난 맥주가 왜 고향에서는 드물어진 걸까요?
영국으로 간 두 양조사
이야기는 빈 근교 지머링(지금은 빈 11구)의 양조장에서 시작합니다. 클라인슈베하트(지금의 슈베하트, 빈 남동쪽에 맞닿은 도시) 양조장 집안의 아들 안톤 드레허(Anton Dreher)는 이곳에서 양조를 배웠고, 같은 때 그곳에서 수련하던 뮌헨 슈파텐(Spaten) 양조장 집안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Gabriel Sedlmayr II)와 친구가 됐습니다 3, 4, 5.

두 사람은 1830년대 전반 독일과 영국의 양조장을 돌았는데 그중 영국에서 맥아를 말리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중부 유럽에서는 불길과 연기가 닿는 가마에서 맥아를 말려, 맥아가 고르게 마르지 않고 그을리기 쉬웠고 이에 따라 맥주도 대개 짙은 갈색이었습니다. 영국 양조사들은 뜨거운 공기로 간접 건조해 고르고 덜 탄 밝은 맥아를 얻었습니다 1. 드레허는 이 건조법과 함께 온도계와 빠른 맥즙 냉각 방식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7, 4.
이 여행에서 두 사람이 속이 빈 지팡이로 영국 양조장의 맥즙과 맥주를 몰래 떠서 호텔에서 분석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옥스퍼드 컴패니언의 제들마이어 항목은 이를 산업 스파이의 고전적 사례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5.

1841년 슈베하트의 라거
드레허가 돌아와 양조장을 물려 받은 뒤 클라인슈베하트 양조장이 1841년 첫 하면발효 라거를 내놓았습니다 8, 4, 9, 2. 다만 드레허가 집안 양조장을 언제 넘겨받았는지는 자료가 갈립니다. 마이어 백과사전, 빈 박물관의 해설은 드레허가 1836년 양조장을 맡은 것으로, 슈베하트 양조장의 공식 연혁은 1840년 어머니에게서 2만4천 굴덴에 샀다고 밝힙니다 7, 3, 4, 8.
드레허는 영국과 뮌헨에서 배운 것을 슈베하트에서 활용해 맥주를 빚었습니다. 맥아는 영국식으로 뜨거운 공기에 말렸고, 발효는 함께 수련한 제들마이어에게서 배운 바이에른식을 따랐습니다 7, 4. 낮은 온도에서 하면발효한 뒤, 겨울에 거둔 천연 얼음으로 식힌 저장고에서 몇 주 더 천천히 숙성해 슈베하트의 맥주가 탄생했습니다 7, 4, 9.

양조장은 빈 시내가 아닌 빈 근교 클라인슈베하트에 있었고, 맥주 이름도 '클라인슈베하터 라거비어(Klein-Schwechater Lagerbier)'였습니다 1, 8, 4. 그러나 이 맥주에는 지금까지 '비엔나'라는 이름이 붙어 다닙니다. 옥스퍼드 컴패니언은 드레허와 제들마이어가 영국식으로 뜨거운 공기에 말린 맥아가 각각 '비엔나 맥아', '뮌헨 맥아'로 불리게 됐다고 적습니다 1. 비엔나 맥주라는 이름이 언제 맥주 스타일로 굳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처음 맥주 이름은 '클라인슈베하터 라거비어'였고 '비엔나'가 붙은 것은 맥아였으니, 새로웠던 '비엔나 맥아'가 먼저 알려지고 그 맥아로 빚은 맥주가 자연스럽게 '비엔나 맥주'로 불렸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맥주의 색도 이 맥아에서 나옵니다. 1841년 맥주는 약하게 말린 모라비아(지금의 체코 동부)산 맥아와 보헤미아 자테츠(지금의 체코 서부)의 사츠 홉으로 빚어, 맥아 향이 앞서고 홉 향은 은은했습니다 4. 비엔나 맥아는 뒤에 금빛 라거 필스너에 쓰인 아주 밝은 맥아보다 진하고, 뮌헨의 짙은 맥아보다는 옅게 말린 맥아였습니다 11. 당시 뮌헨의 라거가 아직 짙은 갈색이었으니 1, 비엔나 라거의 호박색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온 셈입니다.
오늘 비엔나 라거 하면 떠올리는 주황빛 도는 붉은 호박색은 BJCP 지침이 정한 밝은 적갈색에서 구리색과 맞습니다 2. 하지만 맥주사 연구자 안드레아스 크렌마이어(Andreas Krennmair)는 19세기의 비엔나 라거가 이보다 조금 옅었다고 봅니다. 1980~90년대 미국 크래프트 양조사들이 좋은 비엔나 맥아를 구하기 어려워 짙은 캐러멜 맥아로 색을 흉내 낸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의 붉은빛은 그때 굳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11.
제국에 퍼진 드레허 맥주
슈베하트 양조장을 본거지로 한 드레허의 회사는 곧 합스부르크 왕국 곳곳으로 넓어졌습니다. 드레허는 1859년 자테츠 근처 미켈롭(지금의 체코 메홀루피) 영지를, 1862년에는 페스트 근처 슈타인브루흐(Steinbruch, 지금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쾨바냐 구) 양조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1863년 12월에 죽었지만 회사는 1869년 트리에스테(당시 오스트리아의 아드리아해 항구, 지금 이탈리아) 양조장까지 더했고, 1870년부터는 아들 안톤 2세가 이끌었습니다 7, 3, 8.
20세기 들어 이 회사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본거지인 슈베하트 양조장은 1913년 빈의 장크트마르크스(St. Marx)·지머링 양조장과 합쳐 '페어아이니히테 브라우어라이엔(Vereinigte Brauereien, 연합 양조장)'이 됐습니다 7, 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다른 지역에 있던 양조장들은 1차 세계대전 뒤 제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지면서 회사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부다페스트와 트리에스테의 맥주는 지금도 드레허라는 이름을 달고 각각 국제 맥주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9.

고향에서 밀려났지만 되살아난 호박색
회사와 별개로 맥주 자체의 위상도 고향에서 달라졌습니다. 비엔나 라거는 20세기 들어 오스트리아에서 거의 빚지 않는 맥주가 됐습니다 1, 4, 9, 12.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 기사는 양조사들이 차츰 필스너의 금빛으로 옮겨 갔다고 씁니다. 불투명한 도기와 주석 잔 대신 투명한 유리잔이 퍼져 맥주 색이 눈에 보이게 된 것도 이 변화를 거들었다고 봅니다 9. 비엔나 라거는 1900년 무렵부터 필스너에 밀리기 시작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지나며 거의 사라졌습니다 13, 12.
고향인 오스트리아 밖에서는 1980년대부터 미국과 캐나다의 크래프트 양조사들이 비엔나 라거를 다시 빚었고, 사무엘 아담스 보스턴 라거(Samuel Adams Boston Lager)가 대표로 꼽힙니다 4, 13. 오스트리아에서는 2000년대 중반 작은 양조장 구스베르크(Gusswerk), 론치움(Loncium), 브루 에이지(Brew Age)가 먼저 비엔나 라거를 되살렸습니다 4. 1841년 맥주 175주년인 2016년에는 빈의 오타크링거(Ottakringer)와 슈베하트도 비엔나 라거를 내놓았습니다 8, 4, 12.
오늘날 BJCP 지침이 비엔나 라거의 예로 드는 시판 맥주는 일곱 가지입니다. 미국의 처커넛 비엔나 라거(Chuckanut Vienna Lager), 데빌스 백본 비엔나 라거(Devils Backbone Vienna Lager), 피게로아 마운틴 레드 라거(Figueroa Mountain Red Lager), 헤비 시스 커틀라스(Heavy Seas Cutlass), 셸스 파이어브릭(Schell's Firebrick), 오스트리아의 오타크링거 비너 오리지널(Wiener Original), 이탈리아의 테레지아너 비엔나(Theresianer Vienna)입니다 2, 14. 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밀려났던 맥주는, 적어도 이 목록에서는 미국 크래프트 양조장들의 이름으로 더 많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