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들맥주

런던 포터는 어쩌다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됐나

짐꾼의 맥주에 황제의 칭호가 붙고
러시아라는 이름이 남기까지를 따라갑니다.

잔에 담긴 짙은 스타우트. 콘크리트 벤치의 결 위로 빛이 비칩니다.
Blake Wisz / Unsplash스타우트 참고 사진

1796년 8월 20일 화가 조셉 페링턴(Joseph Farington)은 일기에 지인이 갖고 온 포터를 마신 일을 적었습니다. 포터는 흔히 마시던 술이었지만, 이 포터는 런던 스레일(Thrale) 양조장이 러시아 여제를 위해 특별히 빚은 것으로 7년은 상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1, 2.

여제와 포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포터는 런던에서 짐을 나르던 짐꾼들이 즐겨 마셔 붙은 이름입니다 3, 4. 그런 맥주가 바다를 건너 러시아 궁정에 갔고, 여제를 위해 따로 빚었다는 말까지 붙었습니다. 오늘 그 스타일의 맥주는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로 불립니다. 짐꾼의 맥주에 어떻게 황제의 칭호가 붙었고, 왜 하필 러시아였을까요.

런던 노동자의 맥주

포터는 런던 노동자들이 즐겨 마시던 맥주로 시작했습니다. 런던 양조장들은 1722년 무렵 갈색 맥주에 홉을 더 넣고 더 오래 숙성한 맥주를 배럴(약 164리터)당 23실링에 내놓았고, 술집에서는 약 1.1리터에 3펜스에 팔렸습니다 3, 4. 1726년 런던에 온 스위스 여행자 세자르 드 소쉬르(César de Saussure)는 포터를 주로 노동계층이 마시는 진하고 도수 높은 맥주로 적었습니다. 값은 약 1.1리터에 3펜스로, 목마를 때 마시는 1페니짜리 스몰 비어(도수가 아주 낮은 맥주, 대략 1~3%)보다 비쌌습니다. 런던에는 포터만 파는 술집도 여럿 있었습니다 3.

런던에서는 양조도 활발했습니다. 페링턴이 말한 스레일 양조장은 19세기 초까지 포터와 스타우트만 빚었고, 생산량은 1782년 8만5700배럴에서 1809년 약 26만 배럴로 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 됐습니다 2, 5, 6.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 빚던 맥주가 포터였습니다.

양으로 보면 포터는 그 뒤에도 대중 맥주였습니다. 1835~1836년 트루먼(Truman) 양조장이 빚은 포터와 스타우트 24만4천 배럴 가운데 61%는 숙성하지 않고 바로 내는 보통 포터였습니다 7.

다만 여제에게 간 포터가 술집의 3펜스짜리 포터와 같은 술이었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포터에는 등급이 있었거든요.

비싼 등급에 붙던 이름

포터의 등급은 알코올 도수에 따라 붙었습니다. 18세기의 '스타우트'는 색과 상관없이 도수 높은 맥주를 뜻했고, 스타우트 포터는 포터 가운데 도수가 높은 쪽을 가리켰습니다 2, 3, 4. 당시 맥주의 등급은 맥즙에 들어간 맥아의 양으로 갈렸고, 맥아가 많을수록 도수도 높았습니다.

1700년 무렵 세무 관리로 보이는 이가 남긴 필사본에서, 맥아 4부셸(1부셸 약 35리터)로 빚은 보통 도수의 맥주는 배럴당 18실링이었고 맥아 8부셸로 빚은 아주 도수 높은 맥주는 배럴당 3파운드(60실링)였습니다 4. 맥아를 두 배 쓰면 값은 세 배를 넘었습니다. 세금도 따라붙었습니다. 영국 맥주세는 1643년부터 1782년까지 맥주를 '스몰'(아주 약한 맥주)과 '스트롱'(그 밖의 맥주) 둘로만 나눠, 스트롱 맥주는 도수가 아무리 높아도 같은 세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1697년 맥아에 부셸당 세금이 더해지면서, 맥아를 많이 쓰는 도수 높은 맥주일수록 세금을 더 내게 됐습니다 4. 원료의 양에 매기는 세금이라, 도수가 높을수록 세금도 많아지는 구조가 된 셈입니다.

1830년 10월 런던 대형 포터 양조장들은 맥주판매법(Beerhouse Act) 시행을 2주쯤 앞두고 함께 공고를 냈습니다. 이 법으로 맥주에 매기던 세금은 없어졌지만 맥아세는 남았고, 양조장들은 배럴당 12실링씩 값을 내린다고 알리면서 등급별 값을 포터 33실링, 스타우트 43실링, 더블 스타우트 53실링, 임페리얼 스타우트 63실링으로 내놓았습니다. 등급이 하나 오를 때마다 10실링씩 비쌌습니다 2. 이 공고를 찾은 맥주 역사가 마틴 코넬(Martyn Cornell)은 최상위의 '임페리얼'을 양조장이 가장 도수 높은 등급에 붙인 수식어 정도라고 봅니다 2.

1830년 런던 포터 양조장 공동 가격표의 1배럴 값. 포터 33실링, 스타우트 43실링, 더블 스타우트 53실링, 임페리얼 스타우트 63실링으로 한 등급마다 10실링씩 비싸진다. 아래는 1700년 무렵 필사본의 값으로 맥아 4부셸 18실링, 8부셸 60실링.
센 포터는 비싼 포터(가격 등급표와 맥아 양)

양조장은 맥주의 진하기를 원비중(발효 전 맥즙의 밀도)으로 적었는데, 이를 알코올 도수로 어림하면 등급의 차이가 더 잘 보입니다 8. 19세기 런던 리드(Reid) 양조장은 도수 4%대의 포터부터 10% 안팎의 러시아용 스타우트(Russian stout)까지 등급을 여섯 단계로 나눠 빚었고,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8% 안팎이었습니다. 오늘날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라는 이름에는 당시 서로 다른 등급에 쓰이던 두 이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1889년 이 양조장에는 러시아로 갈 스타우트만 채운 저장고가 따로 있었습니다 1, 2, 9. 『옥스퍼드 맥주 컴패니언(The Oxford Companion to Beer)』은 바클레이 퍼킨스(Barclay Perkins, 스레일 양조장을 이어받은 회사)가 1856년에 빚은 러시아행 스타우트도 도수가 10%를 넘었을 것으로 봅니다 9.

이런 술들은 많이 빚는 술은 아니었습니다. 트루먼 양조장은 1835~1836년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468배럴, 포터와 스타우트 전체의 0.19%만 빚었습니다 7. 바클레이 퍼킨스는 1859년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24번에 걸쳐 1만~1만1천 배럴 빚었는데, 그해 생산량 42만5천 배럴의 2.5%쯤입니다 10.

맥주 이름에 '임페리얼(Imperial)'이 쓰인 가장 이른 기록은 1821년 2월 에든버러의 한 커피하우스가 『칼레도니언 머큐리(Caledonian Mercury)』에 낸 '임페리얼 포터(Imperial Porter)' 광고입니다 2. 그렇다면 '임페리얼'은 그저 비싼 맥주에 임의로 붙인 구분이었을까요? 이 맥주를 실제로 마신 사람들을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마신 사람들

영국은 러시아에서 목재와 아마, 대마, 타르를 사고 모직물을 팔았습니다 11, 12. 대마는 이 수입품 중에서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 해군과 상선의 밧줄과 돛을 만드는 대마는 북유럽의 러시아 땅에서만 구할 수 있었고, 영국은 대마와 아마의 다른 공급처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1800년 러시아 황제가 대마 공급을 끊자 영국 정부는 따로 대책 위원회를 꾸릴 정도였습니다 12, 13.

발트해 쪽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는 맥주통을 짤 메멜(지금의 리투아니아 항구 클라이페다)의 참나무 통판과 맥주를 맑게 하는 부레풀을 실어 왔습니다. 178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영국 배로 나간 부레풀만 약 110톤입니다 2. 런던 포터도 이 바닷길을 따라 러시아로 갔습니다.

런던에서 북해와 덴마크 해협을 지나 발트해의 단치히, 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지는 바닷길 지도. 실선은 영국의 수출품(포터·스타우트, 모직물), 점선은 영국의 수입품(대마·아마·목재·타르, 메멜 통판·부레풀). 아래 연표: 1780~1790 상트페테르부르크 포터·영국 맥주 수입 연평균 26만 루블, 1796 여제를 위해 빚은 포터 기록, 1800 러시아가 대마 공급을 끊음, 1822 새 관세가 에일은 막고 포터는 남김, 1912~ 도르파트 양조장 매입과 전쟁·혁명으로 끊김.
런던 포터가 오간 바닷길(지도)

그렇다면 그곳에서 포터를 마시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1784년 휘트브레드(Whitbread) 양조장 창업자의 아들 새뮤얼 휘트브레드와 러시아에 간 윌리엄 콕스(William Coxe)는 러시아 사람들이 평소 보르도와 부르고뉴, 샴페인 지역의 포도주를 먹는다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콕스는 포터도 그곳만큼 좋은 것을 넉넉하게 맛본 적이 없다고도 적었습니다 2. 1800년 윌리엄 툭(William Tooke)은 러시아 상류층의 식탁에 프랑스 포도주인 샤토 마고가 오르고, 그 곁에 영국의 포터·에일과 러시아의 크바스·미드가 늘 놓였다고 적었습니다 2.

툭의 기록에 따르면 1780~17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터·영국 맥주 수입액은 한 해 평균 26만2천 루블, 당시 1파운드가 5루블이었으니 약 5만2천 파운드어치입니다 1, 2. 궁정도 손님이었습니다. 1795년 런던의 한 교회 역사서는 러시아 여제가 자신과 궁정이 마실 스레일 포터를 여러 번 대량으로 주문했다고 적었고, 이때 러시아의 여제가 예카테리나 대제입니다. 이듬해 페링턴이 들은 이야기와도 맞아떨어집니다 1, 2, 14.

더 독한 술을 찾는 손님

러시아행 포터는 왜 도수가 높았을까요? 그 이유는 자료마다 말이 갈립니다. 우선 발트해로 가던 도수 높은 포터를 가리키는 옥스퍼드 컴패니언의 '발틱 포터(Baltic porter)' 항목은 항해를 견디도록 도수 높고 쓰게 빚었다고 설명합니다 14. 코넬은 '얼지 않게 하려고 도수를 높였다'는 통념은 맥주가 얼 만큼 추웠다면 바다부터 얼어 배가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정하고, 그저 소비층이 도수 높은 맥주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씁니다 2.

여기서 인도로 간 런던 맥주를 비교하면 '항해를 견디려고'와 '손님이 좋아해서' 가운데 더 그럴듯한 쪽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인도로 가는 맥주는 도수를 특별히 더 높이지 않았습니다. 인도행 이스트 인디아(East India) 포터는 국내 포터보다 사용되는 홉은 많았지만 도수가 유달리 높지는 않았고,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도 도수 6.5~7% 안팎으로 당시 포터와 비슷했습니다 15, 16. 조셉 뱅크스(Joseph Banks)의 일기에 따르면 1769년 쿡 선장의 엔데버(Endeavour)호에서 출항 1년 만에 딴 포터 한 통이 아주 좋았다고 적혀 있고, 18세기 양조장들은 맥주가 상하는 것을 늦추는 홉을 넉넉히 넣어 1년을 버티는 맥주를 빚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16.

긴 항해를 견디는 데 더 도수 높은 술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면, 러시아행 최상위 등급의 포터는 기록에 남은 손님들의 기호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런던에서 도수 높은 맥주는 맥아가 많이 들고 세금도 더 내는 비싼 맥주였고, 러시아에서 포터를 산 것으로 기록에 남은 사람들은 프랑스 포도주를 들여 마시던 상류층과 궁정이었습니다.

포터가 러시아와 함께한 100년

기록상 수출입 물량으로 보면 러시아는 큰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18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들여온 포터는 1047배럴이었고 1, 19세기 초 영국 맥주의 인도 시장은 한 해 9천 배럴로 그보다 컸지만 이는 한 해 런던에서 빚던 약 200만 배럴의 0.5%도 되지 않았습니다 16. 런던 양조장 십여 곳의 도수 높은 수출 포터는 발트 항구를 거쳐 스웨덴,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로도 갔고, 라트비아 수도 리가와 단치히(지금의 폴란드 북부 항구 그단스크)에도 들어갔습니다 2, 14. 그래도 이 술에 붙은 이야기는 러시아 쪽에 남았습니다.

러시아에서도 17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포터 양조장이 세워졌고 1815년 무렵에는 스웨덴과 덴마크에도 포터 양조장이 있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국산 포터를 계속 들여왔습니다 1, 14. 1822년에는 러시아 정부가 영국 맥주를 갈랐습니다. 그해 3월 31일 새 관세는 면직물과 판유리, 치즈까지 영국 공산품 대부분을 막았고 에일과 사과술도 들어갈 수 없게 했지만, 포터는 스타우트까지 포함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관세 적용 전인 18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 포터는 약 21만4천 병이었습니다 2.

포터만 남긴 까닭은 이번에 읽은 자료에 나오지 않고, 코넬은 러시아가 포터만큼은 흉내 내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2. 좋은 포터는 템스강 물로만 나온다는 믿음이 오래 있었고, 실제로 1841년 한 영국 작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포터를 구두약 병 헹군 물만 못하다고 깎아내렸으니까요 2.

19세기 말로 갈수록 수출입의 문은 좁아졌습니다. 러시아의 수입 맥주 관세가 병당 15코페이카(1881)에서 72코페이카(1900)로 오르고 철도 운임도 수입 맥주에 4~5배여서, 러시아에서 런던 르콕(Le Coq) 상사의 스타우트는 한 병(약 0.75리터)에 2실링 6펜스였고 가짜가 대량으로 돌았습니다. 그래도 르콕은 1912년 투자설명서에서 러시아에서 '임페리얼 크라운(Imperial Crown)' 상표를 백 년 가까이 써 왔고, 러시아의 일류 식당과 호텔 거의 모두에 자기 스타우트가 있으며 식당 값은 한 병에 4~7실링이라고 밝혔습니다. 르콕은 그해 도르파트(지금의 에스토니아 타르투)의 티볼리(Tivoli) 양조장을 사서 관세를 피해 현지에서 빚으려 했지만, 1차대전 중 금주령과 혁명으로 시장이 끊겼습니다 1, 2.

'러시안'은 시장이 닫힌 뒤에

'러시안(Russian)'이 이 술의 판매명이 된 것은 오히려 러시아로 가는 시장이 닫힌 뒤였습니다. 바클레이 퍼킨스는 1921~1922년 영국에서 이 술을 '러시안 스타우트(Russian Stout)'로 팔기 시작했고, 라벨은 1931년부터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Russian Imperial Stout)', 1970년에 '임페리얼 러시안 스타우트(Imperial Russian Stout)'였습니다 2.

페링턴이 1796년에 마신 포터는 이 이름들보다 먼저 있던 술입니다. '임페리얼'은 짐꾼의 맥주 맨 위에 있던 비싼 등급의 이름이었고 2, 10, 7, 그 등급의 이름난 손님은 영국 배가 대마를 사러 가던 러시아의 궁정과 상류층이었습니다 1, 2, 12, 13. '러시안'은 그 시장이 닫힌 뒤 내수 판매용으로 라벨에 붙었습니다.

읽은 자료연구·기사·양조 기록과 이미지 출처
  1. 01
    Albert Le Coq and the Russian Imperial Stout Trade (Martyn Cornell)

    Brewery History Society《Brewery History》172 pp.2-8 / 2017

  2. 02
    Imperial Stout – Russian or Irish? (Martyn Cornell)

    Zythophile(web.archive.org 2023-12-03 사본) / 2011-06-26

  3. 03
    The origins of porter (and a bit about three-threads) (Martyn Cornell)

    Zythophile(web.archive.org 2024-01-17 사본) / 2010-11-22

  4. 04
    The three-threads mystery and the birth of porter: the answer is … (Martyn Cornell)

    Zythophile(web.archive.org 2024-01-22 사본) / 2015-06-05

  5. 05
    Barclay, Perkins & Co. (Ron Pattinson) · The Oxford Companion to Beer 항목

    Craft Beer & Brewing(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전재) / 2012

  6. 06
    From the archives: Barclay Perkins brewery

    Barclays(home.barclays) / 2017-08-04

  7. 07
    Truman Porter and Stout output 1835-1836 (Ron Pattinson)

    Shut Up About Barclay Perkins(블로그) / 2010-09-16

  8. 08
    original gravity (Chris J. Marchbanks) · The Oxford Companion to Beer 항목

    Craft Beer & Brewing(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전재) / 2012

  9. 09
    imperial stout (Brian Glover) · The Oxford Companion to Beer 항목

    Craft Beer & Brewing(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전재) / 2012

  10. 10
    Pale Ale in 19th century Latvia (Ron Pattinson)

    Shut Up About Barclay Perkins(블로그) / 2011-02-16

  11. 11
    Russia Company (기록 해설)

    AIM25 · The London Archives 소장 기록 안내 / 미표기

  12. 12
  13. 13
    Serving the State: empire, expertise and the British hemp crisis, 1800-1801 (J.P. Davey)

    Journal of Imperial and Commonwealth History(엑서터대 저장소 원고) / 2018-03-25

  14. 14
    Baltic porter · The Oxford Companion to Beer 항목

    Craft Beer & Brewing(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전재) / 2012

  15. 15
  16. 16
  17. ·
    Workmen at Barclay Perkins's Brewery (Gustave Doré 1872)

    Wikimedia Commons(대영박물관 소장) / 1872 · 목록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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