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화원 괴테 인스티투트(Goethe-Institut)가 누리집에 실은 필스너 기사는 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838년 플젠(독일어 이름 필젠, 지금의 체코 서부 도시)의 시의원들이 형편없는 맥주 36통을 광장에 쏟아 버렸고, 이듬해 1월 시민들이 힘을 모아 큰 양조장을 짓기로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 보헤미아(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한 지방, 지금의 체코 서부·중부) 지방 도시의 맥주 소동이 어떻게 그 도시의 독일어 이름을 딴 '필스너(Pilsner, 필젠의)'라는 세계적인 맥주 이름으로 이어졌을까요.
양조권을 가진 시민들
소동의 바탕에는 오래된 권리가 있었습니다. 1295년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 2세는 새 도시 플젠을 세우면서 시민들에게 집에서 맥주를 빚어 팔 권리를 주었습니다. 중부 유럽에서는 보통 귀족이 쥐던 권리였습니다 2, 1.
맥주를 쏟은 이듬해인 1839년 1월 2일, 이 권리를 가진 시민들의 위원회가 청원을 냈습니다. 청원의 주된 이유는 이웃 영지의 양조장들이 플젠에 창고를 열고 현지 맥주보다 싼 맥주를 팔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원이 내놓은 해법은 시민이 함께 맥아 제조장과 양조장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청원은 그 장점으로 임대료를 아끼고, 과잉 생산을 막고, 잘 익은 맥아로 더 좋은 맥주를 빚고, 시민이 보리와 맥아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마지막 항목은 하면발효 맥주와 라거를 빚으면 품질이 좋아지고 플젠 밖에서도 시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
맥주 작가 에반 레일(Evan Rail)은 이 청원으로 탄생한 양조장이 문을 연 지 50년 되던 1892년에 낸 기념사와 1883년 플젠시 연대기를 읽고 이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이 기록들을 보면 시민 손으로 바이에른(보헤미아와 맞닿은 지금의 독일 남부)식 양조장을 짓자고 앞장선 사람은 여관 주인 바츨라프 미르발트(Václav Mirwald)였습니다. 양조권 시민이면서 술집도 운영한 그는 바이에른식 설비를 갖추고 바이에른 양조사를 데려오자고 주장했고, 시장 마르틴 코페츠키(Martin Kopecký, 재임 1828~1850)가 이를 도왔습니다 3.

바이에른식을 빚으려다 나온 금빛 맥주
바이에른식 맥주는 그 무렵 보헤미아에서 이미 낯설지 않았습니다. 1892년 기념사를 보면 플젠이 1842년까지 상면발효 맥주만 빚는 동안 보헤미아 다른 곳에는 '바이에른 맥주'라 불린 하면발효 맥주가 퍼졌고, 1841년 당시에는 보헤미아의 양조장 10분의 1이 하면발효 맥주를 빚고 있었습니다 3.
플젠 시민 양조장은 효모도 사람도 바이에른에서 데려왔습니다. 양조장의 첫 양조사 요제프 그롤(Josef Groll, 1813~1887)은 니더바이에른 필스호펜(지금의 독일 바이에른주 동남부 소도시) 출신이었고 1900년 아돌프 바이어(Adolf Bayer)가 올 때까지 이 양조장의 양조사는 모두 바이에른 사람이었습니다 3, 5, 6.
그런데 이 양조장에서 나온 맥주는 시민들이 본뜨려던 바이에른 맥주와 빛깔이 달랐습니다. 맥주사학자 마틴 코넬(Martyn Cornell)이 보기에 시민들이 본뜨려던 그 바이에른식 하면발효 라거는 아직 꽤 어두운 둔켈 계열이었습니다 5. 1883년 플젠시 연대기에 따르면 시민 양조장의 맥아 건조실은 '영국식'이었습니다. 보일러실의 열을 끌어 쓰는 간접 가열이라 열을 조절하기 쉬웠고, 그만큼 옅은 맥아를 만들기 쉬웠습니다 5. 맥주 작가 로저 프로츠(Roger Protz)는 맥주 사전 『옥스퍼드 맥주 컴패니언(The Oxford Companion to Beer)』(2012)의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항목에서, 양조장을 설계한 건축가 마르틴 슈텔처(Martin Stelzer)가 영국을 돌아본 뒤 이런 건조실을 들여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7. 괴테 인스티투트 기사 또한 이 양조장의 첫 맥주가 금빛 노란색이었다고 적고, 그 빛깔을 옅은 맥아와 사츠 홉(Saaz, 자테츠 일대의 홉), 플젠의 연수가 만난 결과로 설명합니다 1.
바이에른식 하면발효를 하려던 양조장에 영국식 건조실과 플젠의 물이 겹친 셈입니다. 그 결과 옛 플젠의 상면발효 맥주와도, 바이에른의 어두운 라거와도 다른 금빛 맥주가 탄생했습니다. 엉뚱한 맥아가 실수로 배달돼 금빛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프로츠는 꾸며낸 이야기에 가깝다고 봅니다 7.
하지만 홉은 통설과 조금 어긋납니다. 첫 필스너에 근처 자테츠(독일어 Saaz, 지금의 체코 북서부 홉 산지)의 사츠 홉을 썼다는 설명이 많지만, 레일이 기념사와 대조해 보니 1842~1844년의 홉은 마리안스케라즈녜(독일어 마리엔바트, 지금의 체코 서부 온천 도시) 근처 므니호프의 요제프 피슈바흐(Josef Fischbach)에게서 샀습니다. 자테츠에서 약 78km 떨어진, 오늘의 사츠 홉 산지 밖입니다 3. 아예 다른 품종은 아닐 수 있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는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조에 쓰인 플젠의 물은 연수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다만 연수가 꼭 있어야 필스너가 된다는 믿음은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옥스퍼드 맥주 컴패니언에서 '독일 필스너' 항목을 쓴 맥주 작가 콘라트 자이들(Conrad Seidl)은 남부 독일 양조사들이 오래 자기네 센 물로는 진짜 필스너를 만들 수 없다고 믿었지만 바이에른 양조장 대부분이 결국 필스를 빚었다고 적습니다. 맥주 심사 지침 BJCP(2021)도 독일 필스를 더 센 물에 맞춘 맥주로 설명합니다 6, 8, 9.

장터에서 빈까지
플젠의 새 맥주는 1842년 10월 5일 처음 빚었고, 11월 11일 성 마르틴 축일 장터에서 처음 통을 열었습니다 3, 7, 10. 프로츠는 이 금빛 맥주가 플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적습니다 7. 또한 이 금빛 맥주는 플젠을 넘어 빠르게 프라하까지 닿았습니다. 기록에 따라 1842년의 우 모드레 슈티키(U Modré štiky)나 1843년의 우 핑카수(U Pinkasů)가 프라하에서 이 맥주를 처음 판 가게로 꼽힙니다 3, 10, 1.


청원이 양조장을 세울 근거로 마지막에 적었던 플젠 밖 시장 진출은 대성공이었습니다. 1856년 무렵 이 맥주는 빈(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지금의 오스트리아 수도)에서도 팔렸고, 1876년에는 플젠의 양조장들이 국철 화차를 빌리고 전용 선로를 놓았습니다. 1900년부터는 빈행 '맥주 열차'가 매일 떠났습니다 3, 10, 7.

이름을 지키려는 상표와 소송
플젠 맥주가 알려지자 비슷한 맥주와 이름이 잇따라 양조되어 시장에 나왔습니다. 이에 시민양조장은 1859년 'Pilsner Bier'를 상표로 등록했습니다 10. 독일 양조장들도 1870년대 초부터 이 맥주를 따라 빚고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습니다. 플젠보다 센 물과 독일 홉에 맞춘 맥주였습니다 6, 9. 1883년에는 비트부르크(독일 서부, 룩셈부르크 국경 가까운 소도시)의 테오발트 지몬(Theobald Simon)이 '필스너식' 맥주를 내놓았습니다 6.
1898년 시민양조장은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ňský Prazdroj)와 필스너 우르켈을 상표로 등록했습니다. 체코어 프라즈드로이(Prazdroj)와 독일어 우르켈(Urquell)은 '원천, 근원'이라는 뜻으로, 두 이름 모두 ‘플젠 원조’ 정도의 의미입니다 10, 3, 7, 5.
같은 1898년 시민양조장은 뮌헨의 토마스(Thomas) 양조장이 'Thomas-Pilsner-Bier'를 파는 것을 막으려 소송을 냈습니다. 1899년 4월 독일 법원은 pilsner가 더는 지명이 아니라 일반 맥주 스타일의 이름이 됐다며 플젠 쪽에 불리하게 판결했습니다 14, 15.
다음 소송 상대는 비트부르크의 지몬브로이(Simonbräu, 지금의 비트부르거 Bitburger)였습니다. 지몬브로이는 1911년 근처 트리어, 1912년 쾰른 법원에서는 졌지만, 결국 독일 양조장들은 이 이름을 계속 썼습니다. 자이들은 1913년 라이프치히(지금의 독일 동부 도시)에 있던 제국법원이 pilsner를 일반 이름으로 보았다고 적고, 프로츠는 1차대전 직전 독일 양조장들이 이름을 pils로 줄이거나 도시 이름을 밝히는 선에서 정리됐다고 적습니다 6, 7.

그사이 독일 필스는 계속 퍼졌습니다. 필스너를 빚는 독일 양조장은 1927년 329곳, 1939년 458곳이었고, 1980년대 말에는 독일 맥주 시장의 약 3분의 2가 필스였습니다. 2차대전 무렵까지 독일 필스너의 기준이던 사츠 홉도 그 뒤 테트낭(독일 남부 보덴호 근처 홉 산지) 같은 독일 홉으로 바뀌었습니다 6.
오늘의 두 갈래
오늘의 심사 지침은 둘을 따로 적습니다. BJCP 2021은 체코식을 'Czech Premium Pale Lager', 독일식을 'German Pils'로 나누고, 독일에서는 'Pils'라는 줄인 이름을 더 쓴다고 적습니다. BJCP가 그리는 체코식은 노란빛에서 짙은 금빛을 띠고, 빵 같은 진한 맥아 맛 위에 뚜렷하지만 부드럽게 둥근 쓴맛이 얹힌 맥주입니다. 재료로는 체코 맥아와 전통 체코 홉, 체코 라거 효모, 황산염과 탄산염이 적은 부드러운 물을 꼽습니다. 독일식은 그보다 색과 바디감이 가볍고, 더 드라이하고 청량하며 쓴맛이 길게 남는 맥주로 그립니다 8, 9.
지금 남은 보호
그러면 지금 이름을 지키는 제도는 어떨까요. 2026년 10월 28일 EU 지리적 표시 등록부(eAmbrosia)를 찾아보면 맥주로는 2008년 10월 17일 등록된 'České pivo'(체코 맥주)를 비롯해 체코 이름 여섯 개가 있습니다. 플젠이나 Pils가 들어간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16. 홉은 사정이 다릅니다. 'Žatecký chmel'(사츠 홉)은 2007년 5월 9일 원산지명칭보호로 등록돼 있습니다 16.
국제 등록은 기록이 엇갈립니다. 리스본 협정 국제등록부의 2017년 사본에는 'PLZEŇSKÉ PIVO / PILSNER BIER'가 2호로 1967년 11월 22일 등록돼 있습니다. 생산지는 플젠시이고, 다만 프랑스(1969) 등 여러 가입국은 자기 나라에서 이 이름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17. 2026년 10월 28일 WIPO의 같은 등록부를 검색했을 때는 이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18.
1839년 청원이 지키려던 것은 플젠 안의 맥주 시장이었고, 바깥 시장은 장점 목록 마지막에 한 번 적은 곁가지였습니다 3. 그렇게 빚은 맥주는 큰 인기를 끌며 빈행 열차에 실려 퍼졌지만, 플젠은 독일 법원에서 그 이름을 지키지 못했고 2026년 10월 28일 찾아본 EU 지리적 표시 등록부에서도 플젠 맥주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10, 14, 6, 16. 그러나 1838년 광장에 맥주를 쏟고 이듬해 청원을 낸 플젠 사람들이 동네 시장을 지키려고 빚은 맥주는, 플젠이라는 지역을 넘어 맥주 한 갈래를 대표하는 스타일의 이름이 됐습니다.


